어렸을 때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던 죽음에 대한 관념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붕괴되었다가 미약하게 다시 설정되기를반복한다. 이 과정 중에 확실하게 딱 정리되는 것은 없고 매번 낯설고 매번 새삼스럽다. 그게 죽음인 것 같다. 지난 4월, 전국민이 세월호 사건으로큰 슬픔에 빠졌을 때 나 또한 그 슬픔에 함께 했다. 그러나 잔인한 4월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같은 동아리의 후배가 높은 건물 하나없는 그 동네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그 일이 있고 나서야 평소에도 집안 사정이나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힘들어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그 애를 생각하면 슬픔에 앞서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그냥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어? 너 힘들었다면서, 왜 무슨 일이야?’하고 물어보곤 위로하고다독여서 집에 들여보내고 싶다는 생각. 그러나 그 애는 이미 평생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했을 때 그제서야슬픔이 밀려들어오고 눈물이 나온다. 여러 번 겪는 생각의 과정이지만 매번 똑같이 이렇게 새삼스럽게 군다.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우울하고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왜 사는가 싶다. 지금 당장 침대에 누워 숨을 푸욱 내쉬는 끝에 들숨이들어가지 않으면서 그대로 죽을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충격 받을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어서죽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까 난 이대로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인데 이 소소한 정답은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에야도출된다. 죽음과 일상을 분리해 평소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에서 연약한 평화를 얻지만, 결국 주변의 누군가를 떠나 보내거나 필연적으로 있는 내삶의 끝을 떠올려볼 때 죽음에 대해 유의미한 정의를 내려보고 당장 눈앞에 있는 삶을 잘 꾸리고자 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는것, 이게 죽음에 대해 생각 해봐야 하는 이유이자 목적이 아닐까 싶다.
죽음은 너나할것없이 우리 모두 겪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편성, 무슨 짓을 해도 피할수 없으므로 불가피성,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있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체 불가능성을 띠고 있다. 이 보편성, 불가피성, 대체 불가능성 세가지사실을 알면 죽음에 대해 성숙한 자세로 임할 수 있다. 현재에 더 충실하게끔 만들고 삶의 유한성을 자각함으로써 참다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만들기 때문이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는 병으로 인해 자신들의 남은 인생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게 된 두노인이 나온다. 바로 엔지니어인 카터 챔버스와 병원으로 재벌 사업가가 된 에드워드 콜이다. 둘은 매우 다르다. 흑인과 백인이고 지혜롭고자 하는엔지니어와 잇속 밝은 사업가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둘은 같은 병든 노인일 뿐. 그나마 죽기 전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인 ‘버킷 리스트’가 있는카터와 그 일들을 할 수 있는 돈이 있는 에드워드는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함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스카이 다이빙도 해보고 전세계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쫓아다니기도 하다가 후반부에 서로를오해하고 다투곤 제자리로 돌아간다. 카터는 가족 곁에서 치료를 계속하고 에드워드는 지루한 사업에 다시 들어간다. 그러나 카터가 죽음 직전에 있을때 둘은 다시 만나 화해를 하고 버킷 리스트의 몇 개 남지 않은 목록을 지우며 생전의 소원대로 낡은 커피 캔에 담겨 히말라야 산맥에 묻힌다.

덧글
2015/03/18 01:2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2015/03/31 16:43 #
비공개 답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