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Hair, 1979)
나는 툭하면 열광하는 사람이다. 좋은 것을 발견하는 게기쁘고 그것을 나눌 때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큰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어떻게든 친구와 주변사람들에게나누기 위해 과장도 서슴지 않고 ‘영업’을 한다. 그런데 너무 좋은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야무지게 표현하기보다는 그저 얼떨떨해져서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진짜 쩐다!’말고는 다른 말을 못 찾을 때가 있지 않은가. 나에겐 DVD로 마주한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 영국 오리지널팀의 25주년 공연이 그러하였는데, 거기에 또 추가할 것이 생겼다. 바로 1979년 뮤지컬 영화 ‘헤어’(밀로스포만作)다. 이영화는 1967년 제롬 레그니와 제임스 라도의 뮤지컬 ‘헤어’를 영화화한 것이다.
줄거리부터 설명하자면 영화는 시골 도시 오클라호마에서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클로드(존 세비지)가 센트럴파크에서 히피 집단인 버거, 지니, 허드, 우프를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풀어헤친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특이한 민속적인 옷차림을 하고 돌발행동을반복한다. 의도치 않게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그들의 일탈적 행동들,환각제 문화를 함께 경험하는 클로드는 공원에서 마주친 부유한 집안 출신의 쉴라에게 빠진다. 이를안 히피 집단의 친구들은 그를 이어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쉴라 또한 이 히피 집단에게 흥미를갖지만 그 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 때문에 어색해한다. 시간이 흐르고 클로드는 예정대로 베트남 전쟁을대비하기 위한 나라의 부름으로 네바다의 군대로 간다. 버거와 무리들은 친구 클로드를 위해 쉴라를 데리고네바다로 향하지만 면회가 금지되어있다. 이때 버거가 긴 머리를 자르고 클로드로 위장해 자신이 몰래들어가고클로드는 쉴라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때마침 베트남 참전 명령이 떨어지고 버거는 그대로 베트남행비행기를 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국립 묘지 비석들 중 하나 앞에 친구들이 모두 서있고 묘비에는버거의 이름이 적혀있다.
영화의 러닝타임에 비해 스토리는 비교적 간략하다. 이는이 영화가 스토리 위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6,70년대의 히피집단을 보여주고 묘사하는 것에 더 집중하기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이 공원에서 환각제를 즐기며 흥청망청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은 6,7분을 넘게 끌고 가지만 영화 내내 중심에 있던 버거가 죽는 과정이 그려지는 것은 채 3분도 나오지 않는다. 뮤지컬 영화이기에 대부분의 서사가 노래로 진행되긴하나 그 노래가 내용의 전개를 위한 가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감독은 철저히히피집단의 성해방, 평화, 평등, 반전, 환각제 문화를 전면에 앞세우고 영화를 진행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와 히피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1965~1975년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때를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당시에 애국심을 강조하는 징병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영화 속 클로드, 버거, 허드, 우퍼도마찬가지로 징병 대상이었다. 다만 히피집단임을 자처하는 버거, 허드, 우퍼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그 통지서를 태운다. 여기에서 히피집단의특징을 알 수 있다. 히피 집단은 60년대 미국 서부해안을중심으로 성 해방, 평화, 반전을 외친 이들이라고 정의할수 있다. 통지서를 태운 행위는 그들의 반전의식을 보여준다. 또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보면 적나라한 성적 단어들,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들, 환각제의 이름들을 그저 나열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그 단어들을 입에 대놓고 올리는 것이 저급하다고 젠체하는상류층 사회에 보내는 비꼼이다. 노래에서뿐만 아니라 이들의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에서도 그들의 지향점을알 수 있다. 초대되지는 않았지만 쉴라를 보기 위해 간 파티에서 난동을 부리곤 끌려간 구치소에서 ‘왜 머리를 자르지 않느냐, 혹시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냐’묻는 경관에 자신은 그저 머리 긴 남자일 뿐이라고 하는 우프가 나온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틀에 맞게 재단하여 일탈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그냥!’이라고말하는 자유로움이 보이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 뒤에 이어진 노래 ‘hair’와 함께 보여준 구치소 안에서의 춤은 정말 압권이다. 장소의활용과 역동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hair가 또한번 강한 의미를 지니는 장면이 있다. 바로 버거가 클로드를 위해 변장하려고 자신의 긴 머리를 짧게자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머리는 군 규율, 기성 세대의통념에 반항하는 것인 동시에 그들의 우정을 상징한다. 버거는 진정한 뉴에이지 정신을 추구하는 히피무리의리더였다.
여기서 우리는 히피집단을 그 자체로만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그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둘러싼 시대상황이나 그들의 차림새, 행동에서더 나아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지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사상은 ‘뉴에이지’로 집약될 수 있다.
뉴에이지(New Age)는 직역하자면 말 그대로 새로운시대를 의미한다. 히피들은 그 당시 사회를 내리누르고 있던 전쟁과 산업화의 그늘에 신물이 난 상태였고이에서 탈피하고자 했기에 종교적 힘이 필요했다. 허나 기존에 있던 종교들 또한 사회분위기에 발맞춰 실상은찌들어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새 시대’를 바라게 된 것이다. 그 시발점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과 미국 개혁 시에 ‘장미십자가회’와 ‘프리메이슨단’을 통해 유포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새 시대는 점성술에서 말하는물병시대(Aquarius)로 구체화 된다. 그들에 의하면유대교의 양자리 시대, 그리스도교의 물고기자리 시대, 그리고곧 다가올 보편 종교의 물병자리시대로 주기가 있는데 물고기자리 시대는 전쟁과 갈등이 난무하지만 2376년의물병자리 시대가 오면 조화, 정의, 평화, 일치가 있으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소망은 이 영화에서도 잘 보이는데, 영화 초반 머리에 꽃을 단 여인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Aquarius’다. “달이 일곱번째 집에 머물고 목성과 화성이 나란히 올 때, 평화가행성들을 이끌고 사랑이 별들을 이끌게 될 것이니, 물병자리 시대의 새벽이 밝아오네. 조화와 이해, 공감과 신뢰가 넘쳐나는 시대, 더 이상 거짓도 조롱도 없어라. 행복한 삶, 환상적인 꿈, 신비롭고 투명한 계시, 마음의 참된 해방만 있을 뿐 물병자리 시대는…”라는 가사가 그들의소망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뉴에이지의 궁극적 주장은 바로 “종교의 가르침은겉으론 모두 다르지만 실제로는 전부 같다”라는 것인데, 세상여러 종교의 가르침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는 맥락에서 혼합주의(syncretism)적성격을 띤다. 고대 이집트의 관습, 히브리의 신비철학, 초기 그리스도교의 영지주의, 수피교, 드루이드교 지식, 켈트족 그리스도 사상, 중세 연금술, 르네상스 헤르메티시즘 등등 여러 종교들에서 좋아 보이는것은 다 가져다 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특히 요가, 힌두교,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새 시대이긴 하나 사실상 새로운 것은없이 그들이 받아들이기에 좋은 것들을 혼합해 놓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들은 또한 복합적이라는 것의측면에서 설명하자면 종교,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활동, 일상생활, 사고방식에 느슨히 퍼져있었기에 다양한 양상을 띨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있는 공통점은 우주를 하나의 유기적 존재이자 에너지로 보며 모든 종교와 문화에 앞서는 우위의 ‘영원한 지식’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불교가 수행의 끝에 득도가 있다고 생각하듯 히피들은 그 끝에 새로운 영성(newspirituality)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인간의 불완전성, 유한성을 치유해주는내적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이러한 특징은 기존 종교에서는 예의주시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권위 있는 교회의 교리보다는 그들이 여기저기서 믿기 좋은 것들을 모아둔 뉴에이지는 사람들을 혹하게 만들기 쉽기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뉴에이지에 혹한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자아실현을 위한 이상 세계에 집착하며 안으로파고들다 보니 외부 세계와는 멀어지기도 했고, 그들이 말하는 이상세계의 가상성에 충돌하여 외로움과 허전함을호소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완성해가기보다는 다가올 뉴에이지를 기다린다는 명목으로은근히 무력과 무책임함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이 영화에서 허드라는 캐릭터를 통해서도목격할 수 있다. 그는 현실의 책임성을 요구하는 부인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한 단계 위임을 강조하고우월감을 느끼며 자아도취한 인물이며 실제로는 부인과 자식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사실 그 촌스러움에 세대차이를 느껴 당황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청춘에 공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역사의맥락, 어떠한 문화의 흥망이 때때로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는 일련의 과정에 유사하게 나타난다고생각하곤 하는데, 1960년대의 히피문화는 모든 인간이 태어나 10대후반 20대 초반의 청춘 시기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들은모두 히피 같아지는 시기를 겪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 이것과 별개로 금방 감정이입 할 수 있었던것은 지금 시대가 영화의 배경이 된 미국의 60년대와 무엇이 달라졌나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휴전 중이고 남자들은 애국심이라는 단어에 종용되어 가장 좋을 나이에 징병되며, 극심한 자본주의 아래에서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하루하루 고통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의 이러한 삶이 그 시대 전쟁과 산업화로 인해 피폐해졌던 그들의 삶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뉴에이지라는 것을 조사하며 뉴에이지가 가진 한계점이 내가 가진 안일함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좋게좋게’ 생각하는 것을 넘어 ‘내 입맛에 맞게’ 생각하며 책임감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나는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한 것이 우선이긴 하나,그 마음의 평화가 올바른 길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혹여나 내 구미에 맞게, 편하게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고 있는 내가 아닐지 생각해보려 한다. 이러한반성이 곁들여진다면 내가 겪고 있는 이 히피시대는 역사 속의 히피시대와 달리 성공하여 오래오래 빛을 내지 않을까.
